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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대화

니체는 누구이고 그의 철학은?

소사블 2023. 12. 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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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아니라 승리하라.

나: 왜 니체는 본인이 권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전투이며, 평화가 아니라 승리라고 했나요?

 

철학자: 아마도 나태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 평화라고 거짓 칭해서 성의없게 사는 사람들을 꼬집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 그렇게 승리를 하라는 것은 무엇을 승리하라는 것일까요?

 

철학자: 스스로 승리자가 되어 웃는 것, 삶이란 춤을 추는 것,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 음.. 조금 어렵습니다.

 

철학자: 낙타처럼 순응하지 않고 단호히 진실을 위해 거부하고 스스로 맞서 싸우는 것 아닐까요.

나: 뭔가.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삶을 맞서라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말 삶은 낯선 투쟁 같이 느껴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모든게 처음이니까 말이죠. 고3이 되어 수능 치르는 것도 처음, 대학도 처음, 군대도 처음, 연애도 처음, 결혼도 처음, 직업도 처음이니까 말이죠. 

 

철학자: 나중엔 늦어서 노인이 되는 것도 처음, 죽음 맞이하는 것도 처음이잖아요. 

 

나: 그런데 니체의 영원회귀 철학?  그것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라는 말이죠. 정말 그런가요?

 

철학자: 마치 그건 불교 윤회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번 있는 삶-바로 님이 겪는 삶을 죽은 이후에 다시 또 반복한다는 것. 마치 원처럼 말이죠. 끝은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시작일 뿐입니다. 

 

나: 근데 저는 다시 태어나면 수능 다시 치르고 싶지 않은데, 또 직장 시험 준비하는 것도 싫은데 그런것도 감수해야 하죠? 

 

철학자: 그렇죠. 불교에서는 윤회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대비되기는 합니다. 

나: 흠... 잘은 모르지만 두가지 차이는 나중에 이해해보도록 하죠. 

 

철학자: 한번 질문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나: 제가 보기엔...결국 자기 완성이 아닐까 합니다.

 

철학자: 멋진 말이네요. 자기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네...자기의 부족한 면, 과거의 것은 포기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철학자: 좋습니다. 혹시 철학과 예술 이런 것 좋아하십니까?

나: 예~ 좋아라하지만 먹고살기 바뻐서..ㅜ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철학자: 바로 자기를 완성하고 새롭게 태어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해요. 남는 시간이 있어야 천천히 음미하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나: 결국 시간이 중요하군요.

 

철학자: 네 맞아요.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느라, 본인 스스로도 주변에 대해서도 모든것이 차곡히 단정하게 정렬되어 앞만 바라보는 사람은 니체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니체를 이해하려면 오히려 니체나 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려는 사람이 더 공부가 안될 수 있어요.

 

나: 어.어렵네요.

 

철학자: 한번 그럼에도 니체를 이해해 보죠!

 

 

나: 니체는 대체 어떤 분입니까?

 

철학자: 그는 문명치료사, 의사이자 환자, 사유의 무정부주의자, 철학의 테러리스트, 서양의 붓다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어째서 그렇죠?

 

철학자: 니체를 경계로 현대와 이전 세계를 나누는 점이 있기 때문이죠. 

 

나: 근데 제가 알기론 니체 굉장히 특이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강도 나빴고, 미치광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기도 하고..

 

철학자: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 문명을 퇴락시킨 '유대-기독교적 도덕들' 그리고 수동적 니힐리즘을 깨부셨습니다. 

나: 니힐리즘이 뭔가요?

 

철학자: 일종의 허무주의를 이르는 말입니다. 

 

나: 아하 그렇군요. 

 

철학자: 혹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나: 예~ 니체의 유명한 말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니체의 분신과도 같은 '차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철학자: 단순히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라기는 보다는 '신'으로 지칭되는 초월적인 가치의 붕괴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나: 인간이 믿고 있는 절대적 진리가 사실 고정관념과 같은 것이고 그런것이 무너졌다는 것을 말하나요?

 

철학자: 예~ 그렇습니다. 중세와 근대의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은 하나의 비유적이기도 한 '절대적, 초월적' 가치의 대표적인 대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나: 예..그렇군요. 대략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중략) 그런데 제가 니체 일대기 읽어보니까 그 사람은 정말 기이한 행동 많이 한 것 같은데요? 마부 대기소에서 한 마부가 말에 채찍질을 하는데 니체가 느닷없이 비명 지르며 광장을 가로질러 채찍질 당하는 말에게 달려가 목을 깜싸워 울부짖었다고 하던데.. 그러다가 흥분상태라서 정신을 잃기도 하고..

 

철학자: 예~ 그 장면에 '죄와 벌'이란 책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아마 니체가 읽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그 사건이후로 니체는 동공이 풀리고 의식은 혼미해지게 됩니다. 광란의 몸짓으로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자 하숙집 주인이 경찰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 흐음..

 

철학자: 니체가 왜 그런 소동을 펼쳤는지는 좀더 니체의 사상을 이해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나: 네..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

 

철학자: 우리는 매일 하루가 가고, 또 다시 내일 아침이 밝아오지 않나요? 계절도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무수히 순환하지요. 

 

나: 네 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계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라고 봐야 할까요? 

 

철학자: 예~ 세계가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인것처럼 우리 삶도 동일한 것의 영원한 회귀 일지도 모릅니다. 

나: 아.. 그럴까요?

 

철학자: 한번 태어난 것은 자연 수명을 다하고 죽은 뒤 자연으로 회귀합니다. 온 것은 돌아가고, 간 것은 다시 온다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막- 근거없는 말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을 이루는 60개조의 세포가 있는데 이것은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세계는 반복과 재생 속에서 영원 회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니체는 자기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었습니다. 

 

나: 똑같은 것이 반복된다? 그건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떨어진 돌을 다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반복하는 것 아닌가요? 

 

철학자: 맞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을 '도달될 수 있는 최고의 긍정 형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 하...왜죠?

 

철학자: 제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만약 인형 뽑기를 한다고 쳐요. 아슬아슬하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기회는 오고, 또 오고, 또 올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실패했다고 아쉬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기회가 오니까요. 

 

나: 음...우리가 아쉽게 헤어진 사람을 어차피 다시 만날 수 있겠네요. 한번 맺어진 인연은 또 이어질 것이겠죠. 왜냐하면 그것은 반복되니까요. 

 

철학자: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실패했다가 좌절할 필요도 없고,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다시 시도하고 좌절해도 또 다시 시도하면 됩니다. 얼마든지 같은 상황을 맞이할 것이까요. 

 

나: 아하.. 반복적인 영원회귀 상황이 오히려 희망적으로 보자는 것이로군요. 권태같은 것이 아니라..

 

철학자: 그렇죠~!

 

 

니체의 충격

 

철학자: 니체가 38세때 21살의 여인인 살로메에게 빠진 것은 알고 있나요?

나: 아..그랬어요?  사랑은 이뤄졌나요?

 

철학자: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루 살로메란 여자가 취리히 대학에서 비교종교학과 예술학을 전공하여 재능과 거기에다 미모를 다 갖춘 여성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명한 사람들인 바그너, 릴케, 마르틴 부버, 하우프트만, 프로이트 등 유럽 지성들이 루 살로메에게 매혹당하게 됩니다. 

 

나: 살로메란 여인은 누구를 선택하나요?

 

철학자: 처음에는 자신에게 지적 세례를 퍼부은 아버지뻘인 마흔 세살의 기혼자-헨드릭 길로트에게 빠지지만 그 사람이 막상 청혼을 하자 거절하고 떠납니다. 

 

나: 헉.. 그렇군요..

 

철학자: 살로메는 니체의 제자이자 친구인 파울레와 그리고 니체와 두 남자의 여인 관계를 요구합니다. 일종의 삼각관계인 것이죠.

나: 오래 관계가 이어지나요?

 

철학자: 아니요...  파울레가 살로메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깨지게 됩니다. 이것은 니체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나: 아..

 

철학자: 그뿐만 아니라 살로메는 동거하는 중에 마흔한살 된 카를 안드레아스라는 동양 언어학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되는데요, 그건 그 언어학자가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여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살로메 나이는 스물여섯이었구요, 그때 파울레는 충격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4년만에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을 택합니다. 

 

나: 아주 복잡하군요..ㅠ 니체는요 어땠죠?

 

철학자: 니체는 살로메와의 사랑이 '우주적 사랑'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이 '광란하는 미치광이의 제정신으로, 즉 저주받은 자의 전형적 광기로' 사랑에 빠졌다고 썼습니다. 그 밖에도 니체의 사랑은 거절당합니다. 

나: 니체가 정상이 아니게 될 것 같아요...

 

철학자: 예~ 나중에 니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노상에서 아무나 포옹하고 키스하고, 담벼락에 오르는 것을 즐겼다라는 진술이 적혀있습니다. 그렇게 정신병원에서 1년동안 머문 니체는 후로 10년을 더 살고 1900년 8월 25일 사망하게 됩니다. 

 

 

신은 죽었다

 

나: 신은 죽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철학자: 신을 포함해 사람들은 신처럼 떠받들던 일체의 절대적 가치가 그 본질적 의미를 잃고 허무해짐을 의미합니다. 최고가치의 상실로 인한 허무주의가 도래함을 말하고 있어요. 

 

나: 그렇게 허무주의가 되면 너무 삶이 힘들어서 어떻게 살까요? 

 

철학자: 그래서 비극적 상황 앞에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 고귀한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삶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말하구요. 그 사람이 위버멘쉬이구요. 

나: 음..신이라는 것은 무조건 God 종교적으로만 의미하나요?

 

철학자: 아닙니다. 니체가 예수그리스도라는 특정 신을 지칭해서 신은 죽었다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니체가 그리스도교의 순수한 사랑의 정신을 부정한 것도 아니에요. 그리스도교의 형이상학, 절대선, 도덕규범 등 절대적 진리와 가치체계를 부정한 것입니다. 

 

나: 아.... 본래 기독교가 갖고 있던 사랑의 정신을 니체가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정작 신의 본래 모습을 잘 구현시키지 못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철학자: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교 사상이 본래 사랑의 정신을 없고, 권위주의와 폐쇄성 등에 빠져있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 그렇게 신이 없으면 인간은 어떻게 살 수 있나요? 

 

철학자: 이제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조해야겠지요. 인간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초인(위버멘쉬)가 등장한 것입니다. 

나: 초인이요?

 

철학자: 예~ 초인은 기존의 가치를 넘어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또 위험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극복의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나: 네...

 

철학자: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가치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아모르 파티-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 다시 정리하자면 신은 죽었다는 것은 기존의 절대적으로 여겼던 가치는 사라졌으니 너희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가라는 것이로군요. 

 

철학자: 예 그렇습니다. 

 

망치를 든 철학자

 

 

나: 음.. 니체를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하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철학자: 위의 설명과 같은 맥락입니다. 니체는 모든 전통적 가치를 허물어뜨렸습니다. 여태까지의 관념론적, 기독교적, 행복주의적 도덕을 부정합니다. 노예들은 자신들이 힘센 자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귀족주의적인 선인 고귀함, 힘셈, 아름다움을 무가치한 것이고 악한 것으로 깎아내리구요,  괴로움-비천함-겸손-친절-선량 등을 선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가난한자나 힘없는 자만이 착한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나: 그것이 허구라고 얘기하는 것인가요?

 

철학자: 그렇습니다. 열등한 자들이 왜곡한 삶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한 것이죠. 

 

나: 음.. 그렇군요..그렇다면 새로운 도덕이란 무엇이죠?

 

철학자: 삶이란 권력(힘)에 대한 의지를 하는 것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아무런 잘못이 없구요.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당면한 운명을 사랑하는 정신 '아모르파티'가 제일 중요합니다. 

나: 저는 제 상황에 놓여진 상황이 항상 만족스러운 적이 있던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뭔가가 부족한 게 삶이구요.

 

철학자: 그렇지요..

 

나: 그러다 보니까 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니체말을 들어보니 제가 놓인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맘에 듭니다. 그리고 약자들이 자신의 가치는 선하고, 상대는 악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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