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그냥 사진이 아니라 진짜 전시관에 실제 가면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설명에 의하면 AD900년 마야문명에서 만들어진 ‘죽음과 부활의 가면’이라고 한다. 바깥의 해골(죽음) - 중간의 노인(늙음) - 가장 안쪽의 아이(탄생) 의 가면이 서로 여닫을 수 있도록 가면이 층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아이만 보이게 할 수 있다가, 노인이 보이게 할 수 있다고, 해골이 보이게 할 수 있다가 또 다시 아이가 보이게 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탄생 - 늙음 - 죽음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런 생각에는 죽는다는 것은 일시적인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고, 탄생은 곧 이뤄질 것이다, 꽃이 지고 다음해에 또 꽃이 피고 또다시 지듯이. 이게 정말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순환론적인 사고가 꼭 비과학적이지만도 않은 것이, 지구도 낮-밤 순환(1일) 봄-여름-가을-겨울(1년) 순환 60분도 순환(1시간) 등 순환하는 질서이니 (또 태양도 심지어 자전한단다. 달도 공전하고) 거의 모든 것은 순환 - 돌고 반복되는 체제이니, 아예 근거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기왕 말하고자 하는 김에 몇가지 얘기한다면, 이것은 음-양 의 순환이다. 음: 드러나지 않음, 잔잔한 것, 차가움 양: 드러남, 활동적인 것, 따뜻함이라면, 음 - 양 - 음 - 양 은 무수히 순환하는데, 예를들면 해가 뜨는 낮이라는 것은 ‘양’의 시간이고, 해가 지는 밤은 ‘음’의 시간이다. 계절도 마찬가지로 여름이 ‘양’이라면 겨울이 ‘음’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도 지금 생명이 붙어 있는 상태는 ‘양’의 상태이고(왜냐면, 심장이 열심히 펌프질하면서-죽을때까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니까 - 이것이 바로 ‘양’의 속성 아닌가) 생명이 죽을 때는 체온이 차갑게 되고, 활동적이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음’의 속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음 이라고 해서 그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속성만 달라질뿐 다시금 양으로 돌아오는 것 - 즉 윤회라 본다. (가능한지 모른다. 이론상 그렇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양 속에서도 음이 존재하고, 음 속에서도 양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 생명이 살아있는 순간이 ‘양’의 시간이라고 하지만, 하루에 한번 잠을 자면서 ‘음’ (마치 죽음의 ‘음’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잠이 죽는 연습이라고 누가 말도 안되는 말을 한다고 봤는데, 양(생명) 속에 음이 있다면 잠이 죽음과 연관되는건 아주 안맞는 말도 아닌 듯 하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