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초등교사는 자신의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읽고
자녀지도에 원칙을 갖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당당한 나만의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이 지도방법이 맞는지 긴가민가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원칙, 그때그때 마다 다르게 자녀를 지도한다면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헤깔리고 방황하기 마련일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교육관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터인즉 한번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싶었다.
이책에서는 자녀들을 유능하게 지도한 점을 소개해주어 앞으로 자녀지도에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아 읽기 시작하였다.
왜 벌써부터 성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자녀를 바라보면 서투름 투성이다. 성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말이다. 성인들이 실수없이 일상을 해내가고, 그것이 당연한 일들이 어린 자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숟가락질을 하다 떨어뜨리기도 하고, 휴지를 흘리기도 하고, 집에서 쿵쾅 뛰는 행동 등등 아무리 주지 시켜도 실수는 다시 반복된다. 그러면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화가 날때도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아이가 성인처럼 행동하기를 바라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아이들은 원래 실수를 많이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서툴러 실언으로 상대를 기분상하게 하고, 부모도 아이로부터 불편한 기분을 받게 될 때도 있다. 그러면 아이에게 그 감정을 돌려주어 악순환이 생길 수 있는데... 원래 아이는 부족하고 실수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어떤 아이는 (약간 지나칠 정도로) 어른스럽고 예의바르고 반듯한데, 겉으로만 보고 기특하다고만 생각하면 안될 듯 싶다. (내생각에)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실수투성이와 부족함을 한번에 건너뛴 성숙함은 나중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정말 수재나 영재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린아이 답게 실수하고, 부족함이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자녀를 바라보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몇마디 조언으로 아이가 달라지길 기대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아이들이 잘못된 생활습관이 있을 때 부모는 "이럴 땐 이렇게 하는거야"라고 조언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면 다시 부모는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거라고~~" 반복하여 얘기한다. 그러나 또 실수... 조언.. (무한반복) 이제부터는 아이들에게 듣기싫은 잔소리를 하는 부모가 된다. 더이상 효과가 없다면 그만 멈추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인 '잔소리'는 점점 효과가 떨어지고, 관계만 멀어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조언으로 아이들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기다려보자.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꽃도 있지만 가을이 와서야 피는 꽃도 있다. 이것을 보면서 아이들도 저마다 변화하고 각자 버퍼링되어 성장하는 속도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때가 되면 달라진다.
아이들 뿐만이랴?
어른들도 현재에 오기까지 저마다 다른 과정을 거쳐서 왔다. 꾸준하게 상향의 길을 밟은 사람도 있고, 학창시절에는 방황하다가 20대에 들어서야 정신차려 확 달라진 사람도 있다. 당장 자녀가 뭔가 성과를 내주길 부모는 바랄 수 있겠지만 나는 너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성과를 내주길 조급히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요즘에야 초등학교 때 공부잘하는 아이가 나중에도 잘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매 학교 쪽지시험 결과에도 연연하고 좋은 성과를 내달라고 아이에게 압박을 주는 것은 자발적으로 학업에 대한 동기를 만들어갈 기회를 없애고 앗아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부담이 되서 어디 공부를 하겠는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주자.
가족 여행을 간다고 할 때 부모가 모든 계획을 맡기 보다는 "아들은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고 싶니?" 라고 물어본다. 여행지의 장소를 알려주고 검색도 스스로 하게 해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서 여행 계획의 일부는 자녀에게 담당하게 한다. 그러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행 계획이 좋지 않아서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후회도 경험해 봐야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식으로 여행뿐만 아니라 주말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일에는 친구들을 얼마나 초대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얼마나 보면 좋을지 등등 아이에게 물어보고 판단할 기회를 줘보자. 크고 중요한 선택지는 부모가 결정지을 수 있지만 사소한 것은 아이들이 선택할 기회를 주고, 점차 커가면서 중요한 일들을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점차 늘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0살이 되었을때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라."라고 자유를 온전히 줄 수 있게 된다. 20살때까지 모든 선택의 권한을 부모가 독차지하고 성인이 되어서 자유를 준다면 아이가 제대로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아이를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지 염두해두고 키우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어릴적 모습을 생각하고 대하면 안된다.
위 영상 출처: https://youtu.be/E3yMVPf2Wq4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단지 학업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친구들과 쉬는시간에 팔씨름을 했다든지, 중간놀이 시간에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나 각종 게임을 했다든지 등등 활동이 아이들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꼭 선생님의 말씀이나 교과서에 나온 말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주고, 같이 웃고 교감했으면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하루를 보낸 것이다. 학업도 중요하지만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지시키면 좋을 것 같다. 초등학생-벌써부터 경쟁에 압박을 주어 나중 커서도 경쟁에 치열하게 살기만 할 뿐 주변과 즐거움을 공유하지 못하는 성인이 되게 하면 안될 것이다.
결국 몰입도가 높은 아이가 성공한다.
아이가 색종이 접기든 뜨개질이든 문제풀이 등 하나에 깊게 빠져서 몰입하는 것이 있으면 유념있게 보자. 그런 몰입도가 자녀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주고 성취의 기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기왕 몰입할 대상이 '공부'라면 좋을 것 같지만 아이들은 각종 놀이에서부터 몰입하는 경험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몰입의 경험을 부모는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좋다.
어떤 책에서 이런 예화가 있었다.
한부모는 아이에게 박물관을 데려가서 여러가지 전시물을 보고 느끼게끔 주말에 일찍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박물관에 도착했고, 주차장에서 내린 후 입구쪽으로 걸어가는데 자녀가 "여기 지렁이가 있다~~"하면서 그 지렁이만 신기한듯 가까이서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는 기존에 '박물관 관람'이라는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이제 박물관 열시간이야~ 언능 가자~~"하면서 자녀를 재촉했다고.. 그럼 자녀는 "저기 지렁이~~~ 더 보고싶어~~" 라는 의사를 묵살하고 '교육을 위해' 박물관에 데려갔다고 한다.
만약 자녀의 교육을 생각한다면 자녀가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안에서 어떤 생각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관찰해보자. 박물관에 빨리가자고 하는 대신 "지렁이가 왜 저렇게 꿈틀대지?" "지렁이 어디가고 있는 것 같니?" "지렁이가 좋아" 라는 식으로 자녀의 호기심이 더 자극될 수 있고 자녀 입장에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많은 경험을 자녀에게 제공해주어 무언가에 가장 몰두하는지 관찰해보면 그안에 자녀의 적성과 진로를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자녀를 사랑하는 법
이 질문은 어패가 있다. 자녀를 사랑하면 사랑하지 사랑하는 법이라니... 이것은 개인적으로 던진 질문인데..
헌데, 우리는 자녀들을 볼 때 있는그대로의 자녀가 아닌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시선으로 자녀를 볼 때가 있다. '수학만 잘하면...' 이런식으로..
그러면 내가 원하는대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사랑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이런 사랑은 조건이 붙어있다. 그 조건에 따르는 자녀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자녀를 사랑하는 법이란,
어떤 상황에 있든 '자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의도대로 잘 따르고 모범적인 아이라고 해서 그것이 아이 스스로도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다. 부모가 아이의 간섭하고, 단점을 고쳐주고 좋은 교육을 시키려는 것도 모두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아이를 간섭하면서도 정작 아이가 느끼는 행복감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는 아이의 삶과 행복할 권리가 있을 뿐. 부모의 것이 아니다. 아이가 행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인격자로 대우할 때 아이도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아이의 행복을 빌어주고 있는지 답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잔소리 잘하는 법
반복되는 실수... 이것만큼은 지켜야 되는 룰을 자꾸만 어기는 자녀를 보면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그럴때는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는 절대로 아이에게 훈계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경험해보면, 감정이 앞선 훈계는 아이에게 상처만 남고 의도된 아이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는 야단치는 대로 변하지 않고 칭찬하는 대로 변한다."
책에서는 아이들은 칭찬을 주되게 앞세우되 단점은 고쳐주라고 한다. 칭찬이 앞세우는 방법도 단지 말로만 해서 끝내기 보다는 '쪽지글'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 좋다고 한다. 아이가 가진 장점을 먼저 주되게 바라보고, 단점은 마지막에 고쳐준다.
결론: 부모도 처음 부모라 시행착오 투성일 수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아이가 처음 초등학생, 처음 중학생이듯, 부모도 처음 초등학생 학부모, 처음 중학생 학부모이다. 변화하는 자녀 모습에 늘 부모는 처음이고 낯설다. (매일 보는 자녀라 낯익지만 언제는 낯설어진다.) 그러면 아이에 대해 매일 이해하고 공감하며 어떤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심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도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이렇게 변화하고 있으니 관계가 무수히 변화될 여지가 늘상 있다. 시행착오 겪는 부모인 나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스스로 다독이며 차차 배워가며 실수를 줄여나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노력한다면 어느새 훌륭한 자녀, 훌륭한 부모모습을 그릴 수 있지 않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