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 톨의 밥이 오기까지(불교 연기설)

소사블 2021. 5. 6. 04:08
반응형

식탁에서 우리가 무심코 먹는 밥이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그안에 숨어있다. 쌀을 농사짓는 농부, 그 농부가 쓰는 농기구(←농기구도 이미 수많은 기술력이 압축되어 선조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농부가 힘이 나도록 중간중간 먹는 막걸리. 그리고 벼를 수확하고 도정하는 사람들의 노고, 그것을 운반하는 운전수, 그리고 쌀값 안정화시키는 정부 공무원, 그리고 슈퍼마트에서 쌀을 판매하는 판매원들 마지막으로 밥을 짓는 사람 등

이렇게 쌀 하나에는 농부에서부터, 기계 만드는 것을 잘하는 사람, 운송을 잘하는 사람, 운반하고 배치하는 데 힘을 잘 쓸 수 있는 사람, 판매할 때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고객상대할 수 있는 사람, 가격 책정하는 데 사무업무, 행정업무를 잘하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 등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 할 일 하면서, 동시에 어우려져 협력되면서 한톨의 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은 각자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하는 상태에서 그것이 전체적으로 협력되어 사회전체적인 시스템이 돌아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중 누구하나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고, 어느 분야가 가장 우월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 뿐만 이랴? 벼가 자라도록 해주는 햇빛, 물, 토양 그리고 벌, 모기와 같이 수분을 이루게 해주는 곤충, 땅을 기름지게 하는 지렁이 등 온갖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들의 협력으로 ‘쌀’이 만들어지게 된 것! 그러므로 사소해보이는 것 하나에는 전 우주가 녹아있다고 보는 것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의 단순한 사물을 볼 때 그것을 단지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협조적인 관계로 어우러져서 탄생한 무엇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쌀이 탄생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인간에게 섭취되든가, 아니면 썩는가 해서 그 양상이 변화되는 것처럼, 한 개체는 잠시 만들어졌다가 다른 무엇으로 변화하고 만다. 

그렇다면 나 또한 현재 있는 나의 모습이 영원하게 지금 여기에 머물러있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늙거나 죽어서 내 몸이 다른 분해균 ? 에 의해 사라지고 말 운명을 겪을 것이다. 그건 과거에 늘 그래왔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현재 나도 인간이다,  나 또한 위와 같은 운명을 겪는다는 삼단논법에 의해 확실한 진리로 여겨진다.

 

내가 뭐라고..절대적이고 뛰어난 것처럼 잘난척을 하거나 내 모습이 점차 늙고 흩어져가는 것을 두고 전전긍긍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늙음을 두려워하여 주름 시술을 하고, 동안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고, 늙음이 다가오는 것을 저항한다는 말인가.    거역할 수 없는 변화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인지 현명한 것이 무언인지는 위 연기설에 근거하여 이해한다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년 성형 현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