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4:7)
제1독서(코린토1서 15:1~8)에서는 사도바오로의 말씀이 있다. 스스로가 전한 복음 말씀을 굳게 믿고 지킨다면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믿어야 할 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되살아난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상세히 확인하자면, 하느님은 계시다, 하느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사랑의 하느님이셔서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셨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자 인간을 구원해줄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 분이 예수님이다. 일단 이 사실을 믿고, 그분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이 사실을 믿고, 그분은 또한 사흘만에 살아나셨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
복음(요한 14:6~14)에서는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도 필립보가 재차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아니...방금 예수님이 나를 알았으면 아버지를 동시에 알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말을 듣고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것은...아직 예수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하느님 동격이라는 것은 그당시 제자들도 실감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간 예수님이 보여준 기적의 행적을 보아왔지 않았는가.. 그걸 경험하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의심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나 또한 기적처럼 많은 일들이 나에게 행운이 닥쳐진 것들이 많이 있다고 본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고비를 잘 넘겼던 것 보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를 돕고 있는 '무언가'의 손길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을 속세 용어로 '행운'이라거나 '운이 좋았다'라고 설명하는데, 이 운(運)이라는 것이 나와 무관한 자연의 질서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용어를 바꿔서 하느님의 지도, 인도, 이끄심이라 표현해도 좋을 듯 싶은데...여튼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자연의 질서 앞에 감사함을 갖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