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제1독서(사도행전 9:26~31)에서는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할 때 제자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바르나바가 나서서 사울의 행적을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사울도 담대히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담대히 설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울은 카이사리아로 갔다가 다시 타르수스로 가게 된다. 여하튼 이러한 과정에서 유다와 갈릴래아,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리스크?를 무릅쓰고, 사울이 전도하는 모습을 보니, 그는 전도에 온 자신의 삶의 베팅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까지 의지가 있어야 진짜 신앙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으로 치면 상당히 과거보다 평온한 환경에 있고,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고 쉽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요한1서 3:22)
제2독서(요한1서 3:18~24)에서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하자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는 구절이 눈에 뜨인다. 내가 어떤 사소한 말을 하든지 아니면 순간 어떤 마음을 먹었던지 예수님은 다 아시는 것이다. (신기..) 그리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문다고 한다. 서로 머문다는 것은 서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삶이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경지가 되는 것이 진정 신앙인의 모습 같다.
복음(요한 15:1~8)에서는 예수님이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하셨다. 신앙인으로서 예수님과 하나로 붙어있지만 삶에서 변화가 없으면 아버지께서 다 쳐내신다는 것. 그러니 제대로 머물러서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그만큼 대가가...따라온다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내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라고..)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말씀의 단서는 위에서 밑줄친 것처럼 '나에게 붙어있으면서 열매를 맺는 과일'에 한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그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자신 신앙이 부족한지 한번 돌아보고 요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 돌아봐야 할 듯 싶다.